도구와 인간의 쓸모와 대우

팔걸이가 뽑힌 의자

좆같은 팔걸이를 새로 바꾼 의자에서도 떼어버렸다. 도저히 성가셔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사실 도구 잘못은 아니다. 누군가는 필요했기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도구가 당장 나한테 쓸모가 없다고 해서 욕을 먹어 마땅한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은 예외다. 존재만으로 욕을 먹는 것. 사람한테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더라.

사실 내가 2020년대의 사람이라서 그렇지, 조금만 생각하면 그렇게 이상할 일은 아니다. 인권부터 심리학까지, 우리 모두는 당연히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개념이 보편적으로 자리잡은 것은 인류 역사를 통틀었을 때 비교적 최근 일이기 때문에.

하지만 놓고 보면 참 아이러니하지. 사람은 사람이기에 그런 대우를 수없이 주고받아온 와중에도, 고작 작업을 돕기 위한 수단으로서 만들어진 도구의 제작법은 장인정신이라는 이름 아래 가치를 보장받으며 수백에서 천 년 가까이 귀하게 전해내려왔다는 게.

2025 중간보고

우선 제목 작명부터 유감을 표한다. 20개월의 군 복무 기간 동안 다방면으로 각인되고 뿌리내린 공직기관 문서식 사고가 나의 본래 색깔은 새까맣게 잊도록 만드는 바람에 저따위 제목밖에 쓸 수 없게 되었다. 보고서를 올릴 대상도 올려야 할 이유도 없다. 본문을 전혀 대표하지 못하는 제목이라 할 수 있으며, 알고도 고칠 나은 대안을 떠올리지 못하는 이 상황은 참극에 버금간다.


설 연휴부터, 그러니까 다른 관점에서의 한 해 시작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처음으로 경찰을 불러봤고, 아직도 피해를 치료하기 위해 주 1회씩 대학병원에 내원 중이다. 결코 받고 싶지 않던 종류의 치료를 받게 되었다. 효과는 크지만 비용 부담도 비례하기 때문에 내 발로 걸어들어가 받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됐다. 어찌보면 잔꾀로 덮어놓고 미루다가 터질 게 터진 것일 수도 있다. 오래 전부터 정석적인 치료법임은 알고 있었으니 이제 더 피할 생각은 없다. 그래도 내일이 있다는 사실이 안심이 될 수도,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말에 통감하는 요즘이다. 통감은 너무 깊고, 동의라고 하자.


복무 이후로 5월 끝자락 초여름 바람의, 그 때만 날 수 있는 옅은 습도와 나뭇잎의 냄새를 싫어했다. 기억을 제일 즉각적으로 건드는 감각이 후각 아니던가. 입소 시기의 계절적 특징 자체가 트리거가 된 것이다. 그 향을 마주하면, 머리는 저릿하고 눈알이 분주하게 돌아갔으며 눈살은 찌푸러졌다. 날더러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꾸짖는 소리가 섞인, 수많은 숙인 고개 시점 프레임의 주마등이 길거리 한복판에서 틈조차 주지 않고 습격해왔다. 그냥 걸어가고 있었을 뿐인데 난데없이 자기효능감은 말라비틀어지고, 죽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딱 작년까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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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세상에서 사람으로라도 살아가기

세상은 이미 망했고 우리는 어디 못 갔다.

그래서 안정감 소속감 막역함을 더 갈망했던 건데, 종종 내 능력 밖이라는 걸 순순히 인정하라는 것마냥 시험받는 때가 온다.

그래서 진작 인정했다. 나는 그런 걸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알면서도 또 시도하게 된다. 한 번 더 믿어볼까 하면서 기대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러기를 그만두면, 어떻게 사람으로 살아갈 거야? 죽을 거야? 죽을 자신 있어? 난 없어. 그래서 나는 속더라도 이렇게 있을 거야. 사람이고 싶어.

사람이 자꾸 죽었어.

해군 출신 친구와 복역 시절 얘기를 하다가, 당시 막 도입된 ‘평일 일과 후 외출‘ 제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정도는 혼자서 나갔다 왔다는 친구의 말이 굉장히 신기했다. 우리 군단에서는 그렇게 못 하게 했거든. 평일 외출뿐 아니라 주말에 나가는 외출·외박 통틀어 모두 그랬어. 왜냐면 애들을 내보내면 자꾸 죽었더래. ​ 면도날을 쥐어주면, 운동화 끈을 쥐어주면, 향정신성의약품을 쥐어주면, 혼자 어딘가를 내보내면 죽으려 들었고 죽었어. 자꾸 그렇게 되니 어쩌겠어. 그런 물건들은 특정 환경에서 잠시 걷어두고, 출타는 혼자 못 다니게 하는 거지.​

그렇다, 혼자는 못 나갔어. 그리고 나는 복역 기간 4분의 3을 채울 동안 같이 나갈 친구를 못 만들었고. 그게 좀 힘들었다. 이미 걸레짝이 된 기본권 중에서도 최소한이라도 누리라고 똑같이 주어지는 기회가 있지만 나는 쓸 수 없었고, 그것까지 어떻게 해결해줄 수는 없거든. 학교가 아니잖아.

애들이 자꾸 죽었대. 그래도 이해는 갔다. 나였어도 그랬을 거 같거든. 혼으로 남기를 선택한 그들을 기리며.

2024년 마무리

올해였나 작년이었나, 옆집에 소동이 있었다. 거주하는 할머니께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신고가 접수된 모양이었다. 경찰과 소방관 분들이 문을 따기 위해 몇 시간을 북적북적 모여있었다. 그 뒤로는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잘 살아만 계신다면야 이제 다른 집 사정이니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다행이라고 할지, 이전엔 몰랐던 얼굴을 기억하게 됐고 마주칠 때 반갑게 웃어드릴 수 있게 됐다.


요며칠은 다리 근육이 평소보다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의도한 건 아니고, 한 달을 훌쩍 넘게 진행되는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 때문에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 말고는 안팎을 드나들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층고가 높지 않아 감당하기 힘든 정도는 아니지만, 쓰레기 배출이나 택배 수령 같은 것들에서 골치가 아프게 됐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고 있었던’ 꼴이다. 아니지, 아픈 곳은 골이 아니라 다리다.

평생을 같이 한집에서 지내왔던 할아버지께서는 아흔 둘의 연세로 지난 6월 명을 다하셨다. 가족 구성원과의 작별은 처음인지라 아직도 실감을 하지 못하며 지내던 차, 만약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상황 참 곤란했겠다는 상상을 했다. 연세 때문에 외출할 일이 얼마나 있으실지 싶을 수 있지만, 그 불편한 몸을 이끌고 시내버스에 몸을 실어 노인복지관에 주마다 한 번은 출석을 하셨던 분이다. 취침, 기상, 식사를 분 단위로 정하고 움직이시던 계획적인 분이기도 했다. 한창 활기가 넘치고 주도적으로 살아야 할 나이의 나조차 그 정도의 부지런함과 철저함은 반의 반만큼도 따라갈 자신이 없다. 아무튼 그런 분께도 매 외출마다 계단을 그만큼 오르내려야 할 상황은 결코 감당하기 쉽지 않았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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