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각
사람들은 똑똑하다. 자신만의 방식대로 기쁨을 향유하고, 애정을 맺고 확인하며 유대를 잇고, 종종 어려움에 부딪히지만 곧 털고 일어나며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고 집중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바람직한 모습을 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에 비해 내 정신은 과거에 사로잡혔고, 가슴에는 아직도 원망과 왜곡된 아집만이 은은히 불씨를 이어갈 뿐이다. 촛불은 작지만 방 전체를 채울 만큼 밝으며, 끄지 못하면 내 마음 전체를 녹여버릴 것이다.
사람들은 똑똑하다. 자신만의 방식대로 기쁨을 향유하고, 애정을 맺고 확인하며 유대를 잇고, 종종 어려움에 부딪히지만 곧 털고 일어나며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고 집중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바람직한 모습을 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에 비해 내 정신은 과거에 사로잡혔고, 가슴에는 아직도 원망과 왜곡된 아집만이 은은히 불씨를 이어갈 뿐이다. 촛불은 작지만 방 전체를 채울 만큼 밝으며, 끄지 못하면 내 마음 전체를 녹여버릴 것이다.
중요한 결정을 미룬다. 사소한 것들도 미룬다. 얼마나 중요하느냐 하면 끼니도 포함일 정도다. 내 진로와 20대의 방향을 어떻게 정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냥 지나보내고 있다. 내 머리는 다양한 스타일을 위해 기르기 시작했지만 이제 짧은 형태라면 어떤 모양새로 가꿀지 결정할 수 없어 자르지 못하고 있다.
직면과 선택의 회피라고 생각한다. 결과를 감당하기 싫어. 쎄할 때 받은 미개봉 건강검진 결과표처럼, 모르는 게 있다면 모르는 채 둘래. 멀리 보면 한시라도 빨리 상황을 마주하고 타개할 방안을 모색하는 게 맞는 일이란 걸 모를 정도로 멍청하진 않지만, 정세가 어떻게 틀어져도 마주할 각오가 되어있을 만큼 용감하지도 않는다.
통제권이 나한테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선택을 포기했고, 계획을 할 줄 몰라 연간 분기간 월간 주간 일간 계획을 짜기는 커녕 하루하루가 물 흐르듯 흘러 그렇게 일 주, 일 년, 한 분기, 일 년까지 통째로 흘러가버린다.
복무하던 때 “어떻게 하면 잘 버틸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냥 집에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버려라. ‘여기서 평생 이러고 살아야 하는구나, 내 남은 삶은 이게 전부고 그냥 여기서 지내기 위해 존재하는 거구나’ 하고 생각해라"라고 대답했던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악물고 버티면 남은 기간이 줄고 결국 집으로 돌아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등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원동력으로 삼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희망을 모조리 배제하고 처음부터 주어질 기회는 없었다고 스스로에게 세뇌하는 쪽으로 사고방식을 설정했다. 상상할 수 있는 나은 미래를 비참한 지금 떠올린다면 그 대비가 극명해질 뿐이라, 희망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퇴색해 버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희망의 본래 모습을 보존하고자 희망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그때 (집에 못 간다고 생각하라고 말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바라왔던 미래인 지금은 무엇부터 어떻게 손대고 고쳐 나갈지 감조차 잡을 수 없다.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이 서툴고 밉보이던 시절 들었던 “이것마저 못 버티면 밖에서 뭘 할 수 있겠느냐"는 말에 이제는 반대하지 않는다. 나는 사회 통념상 일반적이라고 여겨지는 그 과정마저 벗어날 수 없다는 무력함을 마주하고 아무런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편의점 점주님이랑은 친해지기 쉽지만 새로 만난 친구랑 친해지기는 어렵다. 관계의 형태는 항상 다르게, 그 다양한 모습의 부각은 기이함을 안겨주며 찾아온다.
교수님께 면담 요청이 왔다. 자기가 봐온 모습과 다르게 지내는 게 걱정되고 안쓰러웠다고 하셨다. 교수님은 기억하고 계셨다. 친구조차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얼마나 변했는지 교수님은 알고 계셨다.
도움의 동앗줄 격으로 간신히 내려오는 관심의 표현은 그 출처나 거리가 종종 예상치 못했던 정도라 나를 놀라게 한다. 의외로 가까운 주변에서는 잘 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주변 사람들은 잘못이 없다. 아무에게도 누군가를 도울 의무는 없다.
아무래도 단념이다. 마음의 병을 앓기 시작한 이후 더 이상 교류를 원치 않던 친구들이나, 앞에서는 걱정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정작 내가 힘들 때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는 사람들의 태도는 모순으로 보인다. 하지만 말했듯, 그 사람들마저 잘못도 의무도 없다.
하지만 하다못해 교수님도 먼저 연락을 주셨는데?
아무래도 단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