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친구들에겐 버텨낸 시간, 가족들에겐 헛되이 내다버린 시간. 또 올림픽 한 번이 돌아올 주기. 출소한 지 사 년이 되었지만 스스로가 복역 중 적법한 방식으로 탈출하지 못한 등신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막 나왔을 때나 지금이나 같은 생각으로, 나쁜 사람들은 여전히 그쪽이 맞았지만 모자란 것도 역시 내 쪽이었다. ’남들 다 하는 거‘ 가지고 아무런 대책 없이 얻어터지기만 했으니.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뭐가 모자랐는지조차 몰랐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알긴 한다는 것이다. 사 년동안 내가 직접 사람들을 보내고 맞이하고 겸상하고 동침하면서 배우고 쌓으려 스스로 노력한 덕이며, 이 경험과 정보들은 억만금만큼이나 소중하다.

그래서인지 올 일월의 공기는 출소부터 지금까지 맞았던 것들 중 제일 가볍고 맑다. 움츠려든 어깨도 잔뜩 찌푸린 인상도,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 펼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내가 아주 오래 전 추위를 버텨낸 방법이기도 하다. 잊고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머릿속에 다시 찾아왔다. 이걸 포함해서 여러가지가.

함부로 희망차다고 설레발치진 않으련다. 하지만 무언가 다를 것 같다는 기대가 생겼다. 이걸로 충분하지. 후회를 하지 않으려고 기대를 뿌리째 뽑아버린 적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내 시각

사람들은 똑똑하다. 자신만의 방식대로 기쁨을 향유하고, 애정을 맺고 확인하며 유대를 잇고, 종종 어려움에 부딪히지만 곧 털고 일어나며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고 집중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바람직한 모습을 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에 비해 내 정신은 과거에 사로잡혔고, 가슴에는 아직도 원망과 왜곡된 아집만이 은은히 불씨를 이어갈 뿐이다. 촛불은 작지만 방 전체를 채울 만큼 밝으며, 끄지 못하면 내 마음 전체를 녹여버릴 것이다.

미루기와 통제권

중요한 결정을 미룬다. 사소한 것들도 미룬다. 얼마나 중요하느냐 하면 끼니도 포함일 정도다. 내 진로와 20대의 방향을 어떻게 정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냥 지나보내고 있다. 내 머리는 다양한 스타일을 위해 기르기 시작했지만 이제 짧은 형태라면 어떤 모양새로 가꿀지 결정할 수 없어 자르지 못하고 있다.

직면과 선택의 회피라고 생각한다. 결과를 감당하기 싫어. 쎄할 때 받은 미개봉 건강검진 결과표처럼, 모르는 게 있다면 모르는 채 둘래. 멀리 보면 한시라도 빨리 상황을 마주하고 타개할 방안을 모색하는 게 맞는 일이란 걸 모를 정도로 멍청하진 않지만, 정세가 어떻게 틀어져도 마주할 각오가 되어있을 만큼 용감하지도 않는다.

통제권이 나한테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선택을 포기했고, 계획을 할 줄 몰라 연간 분기간 월간 주간 일간 계획을 짜기는 커녕 하루하루가 물 흐르듯 흘러 그렇게 일 주, 일 년, 한 분기, 일 년까지 통째로 흘러가버린다.

희망과 원동력

복무하던 때 “어떻게 하면 잘 버틸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냥 집에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버려라. ‘여기서 평생 이러고 살아야 하는구나, 내 남은 삶은 이게 전부고 그냥 여기서 지내기 위해 존재하는 거구나’ 하고 생각해라"라고 대답했던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악물고 버티면 남은 기간이 줄고 결국 집으로 돌아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등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원동력으로 삼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희망을 모조리 배제하고 처음부터 주어질 기회는 없었다고 스스로에게 세뇌하는 쪽으로 사고방식을 설정했다. 상상할 수 있는 나은 미래를 비참한 지금 떠올린다면 그 대비가 극명해질 뿐이라, 희망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퇴색해 버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희망의 본래 모습을 보존하고자 희망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그때 (집에 못 간다고 생각하라고 말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바라왔던 미래인 지금은 무엇부터 어떻게 손대고 고쳐 나갈지 감조차 잡을 수 없다.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이 서툴고 밉보이던 시절 들었던 “이것마저 못 버티면 밖에서 뭘 할 수 있겠느냐"는 말에 이제는 반대하지 않는다. 나는 사회 통념상 일반적이라고 여겨지는 그 과정마저 벗어날 수 없다는 무력함을 마주하고 아무런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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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형태

편의점 점주님이랑은 친해지기 쉽지만 새로 만난 친구랑 친해지기는 어렵다. 관계의 형태는 항상 다르게, 그 다양한 모습의 부각은 기이함을 안겨주며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