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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아웃 2〉 악플 (ㅈㅅ)

나한테 와닿지 않았던 이유, 하루종일 생각해서 드디어 찾았다. 이번 편에서의 라일리는 안전하다.

건강하신 양친께 부족함 없이 사랑받는 환경 속에서 ‘나는 좋은 사람이야’하고 말하는 자아가 자리잡고 있어도, 누구도 그 신념을 도전하려 들거나 불이익의 결과로 내몰지 않는다. 바보같아 보일 뻔한 친구에게 먼저 동전을 주워주는 선행을 보인다고 다른 무리에게 싸잡혀 너드나 괴짜 집단으로 몰리는 묘사는 없었다. 착하고 좋은 것이 그대로 존재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의 청소년기는 그렇지 않은 기억들로 많이 차 있다. 비단 나뿐이 아닐 것이라고, 그래서 이쪽을 건드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을 떠나 삼 일간 친구들이나 선배들과 지냈다면 그 자체로 낯선 환경에서의 위기감이나 공포 조성이 있어야 하는데, 부모를 극에서 퇴장까지 시켜놓고 그런 게 전혀 없는 것도 위화가 심하게 다가왔다. 지난 편에서는 사소한 오해가 쌓여 가출 청소년으로까지 내몰릴 뻔했던 것에 비하면 이번 편의 위험은 그렇게 어둡지도, 와닿지도 않았다. 불안이가 임무를 수행하면서 만들어낸 수많은 가짜 상상 위험들조차 전편의 절정에 해당하는 가출 시도만큼 극적이거나 위협적이지 않았다.

이 두 가지가 엮여있는 것은 바로, 라일리가 이번 영화의 주된 소재로 쓰인 인간관계에 있어 본인이 친구와 선배 중 원하는 쪽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는 것. 사춘기에 들어서며 정말로 도전받고 변화하는 것은 신념과 자아뿐 아니라 그것이 대인관계에 미치는 영향까지 들어간다는 것까지는 이해가 일치하나, 내가 생각하는 진짜 위기는 ‘내가 손을 쓸 수 없는 정도까지 내몰릴 때’일 것이다. 어떤 이유에선지 픽사는 그런 길을 고르지 않았으니 캠프 삼 일간의 행적이 전부 안전하고 진부한 선택으로 느껴졌다.

라일리가 청소년이 된 만큼 당연히 주제의식도 분위기도 맞춰서 올라갔을 것이라고 넘겨짚어 버렸지만, 그 짐작은 영화가 다 끝나고서 바로잡혔다. 사태가 전부 마무리되고, 감정들 중 기쁨이가 “우리 모두는 라일리를 사랑해”하고 외칠 때 ‘저게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건데’라고 생각이 번뜩 들자마자 한 번, 그리고 크레딧 마지막에서 제작진이 아이들에게 남기는 메시지에서 두 번.

결국 여전히 ‘어린이’ 영화로 취급한 픽사와 그렇지 않았던 나 사이의 간극이 낳은 오해였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 묻고 싶은 것이, 그렇다고 사춘기가 어린이는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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