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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더볼츠*〉 후기
미디어〈블랙 팬서〉의 흑인 이야기 이후로 정체성 장사에 맛들린 마블은 여성 서사에 동양인, 파키스탄계까지 끌어옵니다.
정체성 장사의 요점은 이겁니다. “(백인 남성과 토큰 여성 조합뿐 아니라) 나랑 비슷한, 내가 속해있는 군을 대표하는 사람들도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구나!” 하고 아이들에게 환상을 심는 거죠. 이런 면에서는 디즈니 프린세스와도 역할을 같이 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그 정체성이 인종이나 성별이 아니라 정신질환입니다. 게다가 대상이 어린이도 아니고, 오늘날 같은 포용성 넘치는 미디어가 없던 시대에 아픔을 보듬지 못한 채로 커 버려 안쪽이 망가진 채 오늘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어른들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고 어울리려고도, 자기도 1인분 몫 할 수 있다며 시도도 해 보지만 제대로 되는 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살아봐야 뭘 해낼 수는 있을지 스스로 의심하고, 흑역사만 되새기며 자신감은 땅에 떨어지고 결국 자꾸 죽으려 듭니다. 스스로의 존재 가치와 잠재 능력을 깎아내리며 집어삼켜집니다. 커지게 놔두면 주변 사람에게까지 증세를 전염시킵니다. 독성이 넘칩니다. 그게 자기혐오입니다. 외에도 전반에 걸쳐 정신질환 관련 코드가 노골적으로 깔려있습니다.
자기 혼자 처한 그 싸움을 극복하는 데에는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옐레나가 아빠의 연락이 필요했음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모순적이지만 저명한 사실을 담백하게 녹여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렇게 ‘어떤’ 어른들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비슷한 아픔을 겪는 누군가가 손을 뻗어준다면 말입니다.
‘썬더볼츠*’의 별표를 통해 변화의 여지를 남기고 결국 뉴 어벤져스로 집결하는, 포스터의 제목까지 바꿔가며 보여주는 과정이 이제는 이렇게 보입니다. 자신만의 공허와 싸우고 있는 이들에게도 다른 무언가로 거듭날 가능성이 있음을 말하고 싶어한다고요. 혹은 그런 환상을 심어주고 싶다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