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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여러 비유들

요즘 신기하게 자고 깸의 사이클은 온전하다. 적어도 해 져 있을 때 잠들어 해 떠 있을 때 깨어있는다. 목요일에는 병원에 갔다. 선생님께서 악몽은 어떻냐고 여쭤보셨다. 약을 바꿨기에 반응을 체크하는 것이다.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그대로라고 단정지었다. 증량하기로 했다.

악몽과 도한이 출소하자마자 있던 건 아니었다. 2021년 상반기에 부쩍 달고 살기 시작하여, 2024년 상반기 그리고 2025년 하반기와 지금 부쩍 심하다. 내 징용과 출소는 체감과 다르게 꽤 오래 전의 일이니만큼, 이제 악몽에 시달리게 하는 주체는 수감의 시기가 아니라 출소 이후 침체를 타파하지 못하는 시기의 내가 아닐까 싶었다. 이틀 정도 그랬다. 하지만 꿈에 등장하는 주제와 인물들을 다시 마주해보니, 아니다. 확실히 아니다. 그저 오래된 기억들에 아직도 쫓기고 있는 것이다.

게임 마인크래프트에는 아이템에 마법을 부여할 수 있다. ‘귀속 저주’라는 마법이 적용된 아이템은 플레이어가 죽을 때까지 벗을 수 없는데, 내 단축키 우선주의 작업흐름 관점과 거기서 따라온 키보드를 다루는 손놀림이 나에게 있어 귀속 저주가 아닐까 한다. 온갖 모멸감에 사로잡힐 언행과 취급을 통해 스킬 하나를 얻은 대신 몇 년을 악몽에 시달리는 교환을 한 셈이지. 정작 그 스킬을 뽐내고 쏟아부을 곳에 찾아갈 수가 없는데도. 어, 이러면 쓸모없는데? 발상 자체야 이미 나 버렸지만 썩 도움되는 비유는 아니군.

휴학 신청을 했다. 입학부터 햇수로 십 년째인데 나는 아직 이 생각만 하면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조여오며 공황에 빠진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번 시간으로 빠르게 툴 사용을 배워야 한다는 어렴풋한 생각은 있지만, 실행에 옮길 생각만으로 숨이 가빠진다. 치료를 받고 싶다.

내게 글쓰기는 뜨개나 조립 같은 것이다. 현대인 3대 영양소 카페인 니코틴 알코올을 전부 소화하지 못하는 이 몸뚱아리를 가지고 스트레스 풀이 수단으로서 할 수 있는 걸 찾은 결과가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감정들을 형태소로 문자화하여 나열하고 정돈하며 읽기 좋게 끼워맞추는 이 행위이다. 부끄럽게도 책을 읽는 편은 아니어서 좋은 글들을 학습한 기반에서 나오는 양질의 글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단어를 고르고 흐름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읽기 편한 글이 되도록 지향하긴 한다. 이렇게 쓰면 어떨까, 저렇게 쓰면 어떨까 하고 여러 시도도 하지만 아마 실력자들은 유추하기 쉬운 공식들에 갇혀있음을 간파할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내 감정을 차분하게 해소하는 거니까, 뭐. 주제도 상관없다. 기분이 안 좋아도 애플 뉴스를 정리하기도 한다. 그러면 성취감이나 효능감보다는 꼬여있던 구름줄이 타래로 풀리며 개이는 느낌이 든다.

지난 주에는 오랜만에 학교 동창을 만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이었다. 당근에 꼭 사고 싶은 희귀 매물이 떴는데, 대중교통 편도로 한 시간 반 거리였다. 너무 멀다고 인스타그램에 징징댔더니 기꺼이 태워다주겠다고 그 친구가 먼저 메시지를 준 것이다. 평소에 즉흥적인 오랜만의 만남을 낭만 한 켠으로 품어왔던 나로서는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 차에서는 요즘 무슨 일이 있는지, 내가 왜 잘 못 지내는지, 무엇을 사러 가는지에 대해 오랜만에 만난 사이치고 솔직한 이야기를 했다. 긴장은 많이 했지만 대체로 너무나 좋은 경험이었으며, 내가 기억하는 선에서는 둘 다 깊은 이야기에 대한 갈망이나 수요가 있지만 오랜만에 만났으니만큼 다음을 기약하며 넣어두었다. 다음 그 다음이 있기를.

보통 실타래로 비유되는 인연이 내게는 물줄기 같다. 중력, 압력이나 위치에너지 등 환경을 통해서만 닿을 수 있고, 제약이 풀리는 순간 전부 물방울이 되어 흩어진다. 상성이 좋은 물방울들은 응집력을 통해 맞닿아 관계를 이어가지만 내 경우는 그런 일이 잘 없고, 나는 어떻게든 다시 이으려 하지만 잘 안 된다. 사실 문장을 쓰면서 생각난 것이 관계에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으로 꼽히는 요소가 경계를 설정하고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인데, 닿는 순간 하나가 되는 물방울 비유와는 썩 알맞지 않는다. 역시 내가 가장 못하는 것이어서 본질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잘못된 비유를 했다고 볼 수 있겠다.

별개로, 나를 대하면서 내 상태를 굳이 물어보지도 않고 결코 의식하지도 않는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묘하다. 덕분에 스스럼없이 왕래하며 꾸준히 나를 집밖으로 이끌어주는데, 이는 그 어떤 친구도 해내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의식적인 선택으로 다다른 것인지 아닌지는 그 친구만이 알 길이다.

정체가 당연하고 해소가 번거로우며 좁은 관계망에서 씨름하는 일상이다. 오랜 기간 그래왔고 당분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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